Professor Kwon Oh Young on Early Korean History

Why study history? In order not to behave weirdly!
역사는 왜 공부하느냐 이상한 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죠.

Henceforth, our history education should [teach] an open kind of nationalism and show consideration towards others.
앞으로 우리의 역사 교육은 열린 민족주의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

Now is the time to do so.
이제는 우리가 그렇게 할 때가 됐습니다.

I’m Professor Kwon Oh Young (Kwŏn O-yŏng). I work at the History Department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I study and teach students about ancient Korean history.
저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에 근무하고 있는 권오영 교수 입니다. 한국고대사를 공부하고 우리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00:23]
Why study history? We study in order not to behave weirdly!
역사는 왜 공부하느냐. 이상한 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죠.

If we allow Nazi-like historiography into our heads, we start to ignore and hold in disdain the minorities and foreigners around us. We become racist and develop aggressive thoughts that then become policies. It’s not okay.
만약에 우리의 머릿속에 나치즘 같은 역사학이 들어와 있다고 한다면 주변에 대해서 소수인들 아니면 외국인들에 대해서 무시하고 경멸하고. 우리가 인종주의에 빠져서 침략적인 그런 사고를 갖고 정책을 펴는 것은 안 되겠죠?

Conversely, if we develop a historical consciousness of slaves such as with which colonial period scholars sought to indoctrinate us, or if we accept a history of submission, it’s also not okay.
또 반대로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그렇게 노력했던 우리 한국인의 머릿속에 노예근성을 넣으려고 했던 역사인식을 우리가 갖게 되거나 그건 또 우리가 굴종의 역사를 감수하고 살게 되는, 안 되는 것이겠죠.

[01:02]
I have to study my whole life, but I will still know less than I don’t know. 저도 평생을 공부해야 되지만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습니다

If you look at Youtube, there are countless people speaking with [feigned] confidence. People who have studied neither law nor medicine, and yet they’ll be saying, “This medicine cures all. It makes you look younger, and cures cancer.” Such people have no sense of responsibility. It can’t be helped. They are not specialists.
유튜브 틀어 보면 그런 이야기들을 막 자신 있게 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법률적인, 의학적인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이 ‘만병통치약 있는데, 이거 먹으면 얼굴도 젊어지고 암도 낫는다, 이것 먹어봐’ 이런 이야기를 그분들은 책임감은 없어요. ‘아니면 말고’예요. 전문가가 아니니까.

But if normal citizens come under their influence, many develop aggressive ideas about history. They develop discriminatory and racist historical ideas towards Chinese, Japanese and Southeast Asians. When youngsters take responsibility for the future and promote such diplomatic strategies, do historians not feel any sense of responsibility?
그러한 영향을 받아서 만약에 우리 일반 시민, 많은 국민들이 침략적인 역사인식을 갖거나 중국, 일본이나 동남 아시아에 대해서 민족차별적인, 인종주의적인 역사인식을 갖고 그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고 그런 외교 전략을 펼쳤을 때, 역사가들은 책임감이 없습니까

They do. It means they failed at teaching proper history.
있죠. 제대로 역사교육을 못한 거죠.

[01:59]
Henceforth, our history education should teach an open kind of nationalism, and considerations towards others. Now is the time to do so.
이제 앞으로 우리의 역사 교육은 좀 열린 민족주의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 이제 우리가 그렇게 할 때가 됐습니다.

The period when we were oppressed and beaten is passed. We, too, should develop warmth towards immigrant women and workers, and [other] minorities. We should narrate a history that can show them consideration. Will we forever only teach how Yŏn Kaesomun (Yeon Gaesomun) and Ŭlji Mundŏk (Eulji Mundeok) caused such great slaughter of the Tang and Sui armies, in order to feel proud? Such historical ideas are utilized in discrimination against people from other places. It’s not okay. 우리가 그렇게 얻어맞고 치이고 이런 시절은 지났잖아요. 우리도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이주민 여성들, 노동자들, 아니면 소수인들 이런 분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배려할 수 있는 그런 역사인식을 이야기를 해줘야지. 언제까지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연개소문이 당나라 군대를, 을지문덕이 수나라 군대를 마구마구 학살하는 것을 보여 주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그 자부심을 가지고서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분들에 대해서 차별하는 이런 사고방식이 이용되는 역사, 그것만큼은 안 되겠죠.

[02:45]
History should not teach ethnic chauvinism, but show that in the process of our development we both fought to the death with other groups, and also got on well with them, sometimes allying against common enemies. Then our descendants can properly establish and negotiate their way through the 21st century. It’s with this in mind that I wrote a book [The maritime silk road and early states of East Asia (2020)].
역사학도 우리 민족 제일주의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이렇게 만들어지는 데에는 주변에 다양한 집단들과 죽기 살기로 싸우기도 했고, 사이좋게 지내기도 했고 공동의 적을 놔두고 손 잡기도 하고, 이런 다향한 모습을 보여줘야지만 우리 후손들이 앞으로 21세기를 제대로 설계하고 헤체나갈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해서 제가 책을 쓰게 된 작은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03:15]
All excavation involves destructive actions. There are few countries that have dug up as much of their land as Korea has over the past 20-30 years. Digging up the country at such speed means that our generation has destroyed more than 90% of the cultural relics that had been buried for thousands of years. Then again, apartments, roads and dams must all be built. We can’t not develop because of archaeological remains. What is required is a method to minimize the damage to remains. And not to build apartments where remains are concentrated.
모든 발굴은 파괴행위를 수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처럼 20-30년 동안 전국토를 이렇게 빠른 속도를 파헤친 국가는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에요. ‘빠른 속도로 전국토를 파헤친다’는 이야기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왔던 우리 문화유산, 땅속에 있는 문화유산을 우리 세대가 거의 90% 이상 파괴한 겁니다. 하지만 주택도 짓고, 도로도 만들고, 댐도 만들어야 되는데 유적 때문에 개발을 안 할 수 없죠. 그럼 방법은 개발을 하더라도 유적의 피해를 최소화하자. 유적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는 아파트를 짓지 말자.

[03:59]
Unfortunately in southern Seoul, there’s not a single street without apartments. Songpa district {southeastern Seoul} is the perfect location [for real estate]. There’s a view of the Han River, and mountains close by. Naturally there will be people who want to build apartment,s and to exercise their right to own property. The problem is that there are archaeological remains under the gound. We must at least seek a mutual consensus, but it’s never easy.
근데 불행히도 서울이 강남은 아파트를 짓지 않을 도리가 없잖아요. 특히 송파구 일대는 정말 좋은 환경이지 않습니까. 한강이 보이고 주변에 산도 있고 당연히 아파트를 짓고 재산권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주민들이 있죠. 그런데 문제는 그 지하에 유적이 있죠. 최소한 우리 사회에서 일치된 이런 합의되는 부분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04:25]
The last capital of the Paekche (Baekje) kingdom (4th century – 660) before being overthrown was at current day Buyeo {South Chungcheong province}. And before that it’s capital was at current day Gongju {South Chungcheong province}. The problem is the early period, that seems as if clouded in fog. Where was Paekche’s first capital? It’s not only us who aren’t sure. The top intellectuals of the Koryŏ period (Goryeo 918-1392) who compiled Samguk Sagi (Histories of the Three Kingdoms, 1145) and Samguk Yusa (Memorabilia of the Three Kingdoms, c.1283) in the 12th and 13th centuries also didn’t know.
백제가 멸망할 때 수도는 지금의 부여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앞에 수도는 공주였다는 것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구름이 자욱하고 안개가 자욱한 것 같은 초기 역사예요. 백제의 최초의 왕성이 어디에 있느냐 문제는 지금 우리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삼국사기>혹은 <삼국유사>를 집필한 12세기 13세기 고려시대의 최고 지식인들도 모르는 겁니다.

However, during the 20th and 21st centuries younger archeologists have solved the problem. So does that mean they have much higher IQs than Kim Pusik or Iryŏn {compilers of the Samguk sagi and Samguk yusa}, or Tasan {Chŏng Yak-yong 1762-1836} who were unable to solve the problem? It doesn’t. It’s because we’ve accumulated our academic capacity. The volume of information we have now is incomparable to before.
그런데 문제는 20세기 21세기 들어와서 젊은 고고학자들이 풀어요. 그럼 그 사람들이 훨씬 위대한 아이큐가 높은 학자이기 때문에 김부식과 일연, 다산 선생이 못푼 문제를 풀은 것이냐? 아닙니다. 우리의 학문적인 역량이 축적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의 정보의 양과는 비교할 수가 없어요.

[05:17]
Concerning Paekche’s first capital there have been countless views. In the 1980s there were two opposing camps split between those who favored Mongch’on (Mongchon) earthen fortress {Olympic Park, Songpa-du district}, and Isŏng (Iseong) fortress in Hanam {c.11km due east of Mongchon}. But the excavation which decided things was the P’ungnap (Pungnap) earthen fortress excavation of 1997 {also located within the Olympic Park adjacent to Mongchon earthen fortress}.
백제의 초기 왕성에 대해서는 수많은 견해가 있었고80년대는 2파전이었죠. 몽촌토성설과 하남의 이성산성설의 주장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설을 결정적으로 끝장을 낸 발굴이 바로 1997년부터 이루어진 풍납토성 발구이다.

Many people thought that the P’ungnap site had already been entirely destroyed but there hadn’t been any excavations there since the 1960s. Due to the high population density of people living there, it was no longer a candidate site for excavations. But in early 1997, Yi Hyŏnggu (Lee Hyeonggu) of Sun Moon University secretly infiltrated the initial ground-breaking for apartments that were to be built within the P’ungnap site.
많은 사람들이 풍납토성은 이미 다 파괴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풍납토성은 60년대에 아주 간단한 발굴이후에는 안 했습니다. 4만 8천명이 사는 인구 밀집 사는 인구 밀집 지역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후보에서 빠졌던 거예요. 근데 97년도에 지금은 이제 은퇴하신 선문대학의 이형구 교수님이란 분이 연초에 풍납토성 내부에서 아파트를 짓기 위한 터파기 공사를 하는데 몰래 잠입을 했어요.

[06:14]
Four metres below the current surface he discovered the early Paekche remains in situ. Following his report, national institutes quickly invested in excavations revealing the site’s entirety. While investigating the fortress walls, they estimated it would have taken more than two million laborers to construct. Excavating the inner area they discovered artifacts and structures that would have been used by the elite and royal house. The debate [over Paekche’s early capital] was thus resolved at the very end of the 20th century. In early Paekche, the most central site, and place that required the greatest manpower to construct and from which the most important artifacts were uncovered, was confirmed as P’ungnap fortress.
지금 우리가 서있는 땅 지면보다 4미터 아래에 백제 초기의 유적이 고스란히 있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을 했습니다. 그래서 신고를 하고 발빠르게 국가기관이 발굴에 투입돼서 전모가 밝혀진 것이죠. 성벽 조사를 하면서 풍납토성을 만드는 데 들어간 연이어 총 노동력이 ‘200만 명이 넘는다’라고 하는 사실, 그리고 ‘경당 지구’라고 하는 토성 내부이 정중앙을 파다 보니까 최고 지배층 내지 왕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특수한 유물, 특수한 구조가 나오면서 20세기가 거의 끝나가는 시기에 그 장구한 논쟁이 정리가 된것입니다. 그래서 백제 초기에 가장 핵심적인 유적, 가장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서 만들고 가장 중요하고 많은 유물이 나오는 유적은 풍납토성이다. 이 사실이 밝혀졌죠.

[07:16]
The Achillie’s heel of Korean society, and not everyone will agree with this, but I can say with certainty: those who constitute the Korean people, numbering some 70 million, didn’t have these same faces [as current day Koreans] in the Paleolithic.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이자 많은 분들이 동이하시지 않을 부분이지만 확실하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한민족이라고 하는 우리 이 7천만에 달하는 우리 민족 구성원은 까마득히 먼 구석기 시대부터 이런 얼굴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I’m rejecting the idea of Koreans possessing a single, pure bloodline. It’s the same for world history. China,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Japanese archipelago were not the same shape as now. Areas where there is sea was land, so it was possible to walk. During the Paleolithic there was no distinction between Chinese, Koreans and Japanese peoples. The same is true for the Neolithic. It’s impossible to distinguish the Neolithic culture of Jilin province, China, from North Hamgyŏng province of Korea immediately to its south.
우리 민족의 순수한 단혈성론을 부정한다고 하는데 그건 세계사적으로 다 마찬가지 입니다. 중국과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지금 같은 지형이 아니라 바다가 많은 부분이 육지화돼 있어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겁니다.  즉 구석기 시대에는 중국민족, 한민족, 일본민족 이런 구분이 없는 거예요. 신석기 시대에 가도 마찬가지 입니다. 중국의 길림성에 있는 신석기 문화하고 지금 바로 길림성 두만강 남쪽의 함경북도에 있는 신석기 시대 문화는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08:10]
The same is true for the Bronze Age. There is much debate about the central locus of Old Chosŏn {c.3rd century – 108 BCE}, the first Korean state in our history. I believe that the early centre was in current day China, in the Liao River basin of Liaoning province. Thinking of modern borders, you might say there’s no need to research this because it’s in China. That cannot be! There was much mutual influence so we should realise that it’s wrong to project modern notions of nation states onto the early past.
청동기 시대도 마찬가지죠. 총동기 시대 우리 민족, 우리 역사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중심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지만 저는 초기의 중심지는 분명히 현대 중국 땅인 요령성 ‘요하 유역’에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런 걸 가지고 지금이 국경 개념을 가지고선 그쪽은 중국 땅이니까 연구할 필요가 없다. 이건 있을 수 없잖아요.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현재 민족과 국가라는 개념을 고대에 투영하는 것은 잘못됐다 이렇게 봐야됩니다.

[08:45]
Outside of school exams, we should look at history more freely. I opposed the single  government-authored textbook {policy imposed during the Park Geun-hye administration by New Right historians} because there is no need to emphasis just one logic, one frame and one analysis [of historical events]. However, there is a precondition to this freedom: we cannot deny objective facts.
당장 눈앞에 시험을 봐야 될 일이 아니라면 좀 자유롭게 역사를 봤으면 좋겠어요. 그런 면에서 국정 교과서에 반대했던 것이 하나의 논리, 하나의 틀, 하나의 해석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다만 거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 자체를 부정하면 안 됩니다.

[09:05]
The tomb of [Paekche] King Muryŏng (Muryeong r.501-523 CE) was excavated in 1971. That this is King Muryŏng’s tomb is a clear and unmoveable fact. From that fact we can freely interpret, and freely imagine [historical circumstances]. But if {as pseudohistorians do}, we say the tomb itself is a fabrication, and also that even the Silla tombs in Gyeongju were also fabricated by historians, we fall into baseless conspiracies theories.
1971년도에 발굴조사된 공주의 무령왕릉은 무령왕의 무덤임이 분명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그 다음부터는 자유로운 해석과 자유로운 상상을 할 수 있지만 그 자체를 다 음모론적인 입장에서 ‘그건 다 거짓말이야’ ‘다 가짜야’  ‘경주의 왕릉도 역사가들이 거짓말 친 거야’ ‘경주에 신라가 없었어’ 이렇게 들어가면 우리는 근거 없는 음모론에 빠지게 됩니다.

[09:36]
At the heart of such conspiracy theories lies an inferiority complex. Because such advocates hate that Korean history unfolded on the Korean peninsula they insist Korean history was continental, not peninsular. They would uproot Kaya (Gaya), Koguryŏ (Goguryeo), Paekche and Silla, and replant them in different locations.
그런 음모론의 깊숙한 마음속에는 철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 역사가 한반도에서 전개된 것이 너무 싫은 거에요. ‘우리 역사는 대륙이 역사이지, 반도이 역사가 아니다’해서 가야, 고구려, 백제, 신라를 다 뿌리를 뽑아서 여기저기 심어 놓는 거예요.

If you do that then what about our Korean peninsula? Is our land cursed?! Should we abandon the peninsula and migrate away?! It is this inferiority complex that was planted by Japanese colonial scholars in the first half of the 20th century. [They said that] peninsular identity and history is deficient and can only suffer defeat {thereby justifying the 1910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그럼 우리의 한반도는 뭐가 됩니까? 이 한반도가 저주받은 땅입니까? 우리가 버리고서는 이민가야 될 땅이 아니잖아요? 바로 그 열등감은 20세기 초반에 일제 식민사학자가 심어놓은 거예요. 반도성, 반도의 역사는 못난이 역사고 이것은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역사다.

[10:21]
We should obviously abandon such notions. But then we can be free. We can make our TV dramas free [to our imagination], and animations as fun as we wish. I believe historical analysis should match the times in which it is made. 분명히 버릴 건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난 뒤에는 자유롭게, 사극도 자유롭게, 만화 애니메이션도 재밌게. 역사학의 해석은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서 달라져 된다라고 봅니다.

[10:38]
On the Kyŏngju plain the total number of graves is beyond count. There are thousands. So why aren’t we investigating them? We mustn’t. For example, in the grand Silla tomb of Hwangnam a horse saddle was found covered in silkworm wings. This was excavated in the 1970s. If we had excavated it now, or in 40 years time we’d have been able to properly preserve the silkworms and the saddle.
경주 평야에 있는 전체 무덤이 숫자는 셀 수가 없습니다. 몇천 개 입니다. 근데 이거를 왜 우리가 조사를 안 하느냐? 조사를 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신라의 황남대총이라고 하는 무지무지하게 큰 무덤에 말 탈 때 쓰는 안장, 그 안에 비단벌레 날개를 수천 개를 뜯어서 붙여놨단 말이에요. 이거를 70년대에 발굴을 했는데 만약에 지금 우리가 발굴을 하거나, 40년 뒤에 발굴하게 되면 그 비단벌레에 대한 보존처리를 완벽하게 해서 그 안장을 제대로 보존할 수가 있잖아요.

[In fact] even currently, we wouldn’t be able to perfectly preserve this artifact that should have been a national treasure. If our descendants excavate these [tombs] with their superior technology in the future, the value of such artifacts will increase. Cultural heritage should be passed on to our descendants If our generation wastes the heritage, what will our descendants think? I think it’s time we stop destroying everything.
이 국보급 유물을 지금 우리의 기술로는 완벽하게 보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후손들이 훨씬 더 좋은 기술을 갖고 있을 때 발굴하면은 정말 그 유물이 가치가 더 높아지잖아요.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은 말 그대로 물려줘야 되는 거예요. 유산을 다 우리 세대에 낭비하면 후손들은 어떡합니까. 이제는 그만 파괴해야 될 때가 뙜다고 생각합니다.

[11:42] Professor Kwon Oh-young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a historian in search of the truth of thousands of years of ancient Korea.
수천년의 시간을 초월한 한국고대사의 진실을 찾는 역사학자 서울대 국사학과 권오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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